“의협, ‘노동기본권 교섭’ 불참은 사회적 책무 방기”
“의협, ‘노동기본권 교섭’ 불참은 사회적 책무 방기”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5.23 14:19
  • 수정 2023.05.2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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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대한의사협회에 노동기본권 교섭 참여 촉구
기준임금 등 노동기본권 보장 위한 10대 요구도 발표
보건의료노조가 23일 오전 10시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 이하 보건의료노조)이 중소 병·의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이른바 ‘노동기본권 교섭’을 성사시키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23일 오전 10시 대한의사협회(의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협에 노동기본권 교섭 참여를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앞선 10일 의협과 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 대한병원협회(병협)에 공문을 보내 23일 2023년 노동기본권 교섭을 개최할 것을 제안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작은 병·의원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문제는 의협, 치협, 한의협, 병협 등이 참여하는 노동기본권 교섭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제안해왔다. 조합원을 넘어 전체 보건의료노동자가 적용받는 교섭을 진행해 처우를 개선해야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노동기본권 교섭은 여태 성사되지 못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만 총 6차례 교섭을 요청했으나 4개 협회의 거절로 무산됐다.

보건의료노조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돌보는 의료전문직 노동자들을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과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것은 반공익적이며, 사회공익적 의료단체의 사회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며 “의협·치협·한의협·병협이 노동기본권 교섭을 거부한다고 해서 멈추지도 않을 것이고,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도 의협·치협·한의협·병협을 상대로 2차, 3차, 4차 노동기본권 교섭을 요구하겠단 계획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4개 의료단체는 지난 18일부터 진행된 수가 협상엔 협상단을 꾸리는 등 수가 인상을 위한 총력을 다하고 있으나 노동기본권 교섭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중잣대이자 이율배반적인 태도”라며 “우리나라 최상층 지위를 누리는 의사와 의료기관의 사적 이익만 챙기지 말고, 모든 의료기관 노동자의 저임금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개선하기 위한 대화와 교섭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작업치료사, 물리치료사, 간호조무사 등은 노동기본권 교섭이 필요한 이유를 말하기도 했다. 재활요양병원에서 일하는 13년차 작업치료사인 우시은 씨는 “지금 직장에서만 근속 7년째지만 근속수당이 없어 9년차나 10년차나 임금이 동일하다. 경력도 인정되지 않아 간접적으로 퇴사가 종용되는 실정”이라며 “병원은 이익을 창출하지만 작업치료사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이다.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서 가치 있는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존중을 보여 달라. 보건의료노동자로 사람다운 정당한 임금을 받고, 아프면 편하게 쉬고, 아이를 키우며 일하고 생활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물리치료사 박승주 씨는 “물리치료사 인터넷 카페를 운영 중인데 임금과 처우, 노동환경과 고충 상담 글이 어마어마하다. 자체 실태조사를 진행했더니 병원장이 임금 인상을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답변이 65%에 달했다”며 “연차와 휴가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답변이 약 45%로 나타났다. 병원 화장실 청소, 심지어는 다른 직종이 해야 하는 업무지만 어쩔 수 없이 배워서 해야 하는 현실에 자괴감이 든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노동기본권이 보장된다면 선배로서 조금이나마 얼굴을 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대학병원 간호조무사 김정숙 씨도 “의원의 대부분은 5인 미만 사업장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돼 매우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다”며 “조무사 대부분은 근속도 경력도 반영되지 않은 채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임금을 받는다. 의사는 최고 연봉, 간호조무사는 최저임금을 받는다. 같이 일하는 사업장 안에서 일어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의협은 노조가 청하는 대화에 응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보건의료노조가 대한의사협회에 직접 전하지 못한 '노동기본권 보장 10대 요구안'이 대한의사협회 건물 문에 붙어 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보건의료노조는 중소 병·의원 노동자들에게 보장돼야 할 기준임금 등 노동기본권 보장 10대 요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모든 의료전문직 노동자가 최소한 연봉 3,052만 원(자격증 소지자), 면허증 소지자의 경우 3,232만 원을 받아야 한다는 게 보건의료노조의 주장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요구하는 연봉의 기본급은 지방자치단체 생활임금 중 가장 높은 광주광역시의 월 249만 3,370원과 같다. 여기에 자격증을 소지한 노동자에게는 월 5만 원의 자격수당이, 면허증을 소지한 노동자에게는 연 20만 원의 면허수당이 추가로 지급된다. 근무경력이 있는 노동자에게는 경력수당을, 같은 의료기관에서 계속 일하는 노동자에겐 근속수당을 매년 2만 원씩 인상하라는 것도 주요 요구다.

더불어 보건의료노조는 모든 병·의원에 ▲주휴일과 관공서 공휴일, 노동절을 유급휴일로 보장 ▲온전한 연차휴가 부여 ▲직무 수행을 위한 보수교육 유급 보장 ▲임신 중이거나 산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임산부에게 야간근무와 연장근로·휴일근로 및 유해·위험 업무 금지와 출산휴가·근로시간 단축제도 보장 ▲의료기관 내 폭언, 폭행, 성희롱, 성폭력, 괴롭힘 금지 ▲면허·자격 범위를 벗어난 업무 지시 근절 ▲직원이 질병 또는 부상을 입었을 때 최소 연간 30일 이내 범위에서 유급병가 보장 ▲기본적인 경조휴가 보장 ▲최소 연 2일 감정노동휴가 보장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전문직 기준임금과 노동기본권 보장 10대 요구안을 의협에 전달하려 했으나 의협 측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직접 전하지 못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치협·한의협·병협에도 공문을 통해 해당 요구안을 발송하겠다는 계획이다.